엄마 같은 동생

환경엔 장사가 없다

김수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07/27 [12:52]

엄마 같은 동생

환경엔 장사가 없다

김수연 칼럼니스트 | 입력 : 2019/07/27 [12:52]

 

▲ 김수연 칼럼니스트/독자편집위원회 부위원장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양수리 쪽 북한강변에 살고 있었다.

수상스키를 타러오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한여름 말고는 인적이 드물었다.

뒤편에는 무속인들이 굿을 했다는 산기슭 밑에 스산한 기운이 도는 곳이 나의 거주지였다.

 

6년 전 이맘때 쯤인 720일 미국에서 막내 삼촌이 전화를 했다.

수연아, 네 엄마가 위독하신데, 오늘이 고비일 것 같구나

전화기에서 삼촌의 목소리가 듣고는 머릿속이 아득하고 그때부터 온몸이 떨려왔다.

 

엄마가 소천하시기 몇 해 전 알츠하이머를 앓으신 아버지를 모시다 보내드렸는데, 이젠 타국 멀리 사셔서 거의 만날 기회도 없었던, 낳아주신 엄마 소식을 듣는 순간 왜 그리 눈물이 쏟아지던지...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됐을 때 그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고, 떠나는 사람의 삶과 죽음이 가엾고 서러워서 떠나는 이를 위해 우는 줄 알았다.

 

두분 부모를 잃을 때마다 분명 나는 앞을 못 볼 정도로 눈물 속에 묻혀 지냈는데, 다시는 못 보게 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서럽고, 내가 불쌍해서 못 견뎌 몇 달을 하염없이 울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이기적인 사람을 정죄하고 혐오하던 내가 사람은 누구나 나 역시도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늦게사 알게 된 것이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는 내 믿음 속에도 분명 나 자신을 위한 믿음이라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이기심이 더 많은 것이 분명하다. 누가 누구를 신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엄마는 미국에서 간단한 장례 절차 후 화장하셨고, 엄마의 유골은 한국에 있는 자식 중 막내인 나에게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엄마의 소식에 넋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어둑한 시간에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주변에 인가는 없고 식당들이 하나 둘 불 꺼지는 시간, 집에는 혼자 있었고 낡은 성처럼 하얀 4층 건물 꼭대기에서 나는 며칠을 울기만 하고 있던 중 이었다.

 

김수연씨 맞나요? 댁에 계신가요? 미국에서 택배가 왔어요

그러고는 초인종 소리가 났고, 당황스레 문을 연 순간 택배기사가 내민 상자를 받아드는데 섬뜩한 느낌과 함께 온몸이 후들거리고 무어라 답했는지도 어떻게 받아들었는지도 지금도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저 다리가 풀려서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기억만 있을 뿐ᆢ 엄마를 택배로 받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엄마의 유골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공항 측에서 나에게 전화로 연락이 오기로 돼있었는데...

 

장례식을 위해 상조회사에서 리무진으로 장례식장으로 바로 모시기로 돼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던 것인지 도착 예정 날보다 훨씬 이른 날짜에 그냥 미국에서 곧장 택배로 배달된 듯해 많이 놀라게 된 엄마와의 마지막 재회의 순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유골을 끌어안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채 하얗게 밤을 지새운 후 다음날에 장례식을 치룰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 함께해준 고마운 지인들을 떠올리면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그르 돌곤 한다.

 

그렇게 부모님과 차례로 각별한 별리를 한 후 50이 다 된 나이임에도 고아의 심정으로 내 속 깊숙이 숨어있던 어린아이와 늘 싸우며 허덕허덕 너덜너덜 주저앉을 듯 지내왔다.

 

그런 내가 들킬까 몇 년을 꽤 씩씩한 척을 많이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같은 상황이지만 방화동으로 이사를 하고 난후 나에게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모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금은 그 풍요로움과 축복을 함께 누리고 있다.

 

챙겨주고 기도해주시는 집안 어른들, 고모들도 계시고, 작은아버지 내외분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렇지만 마치 주님을 대신하듯 나에게 끊임없는 사랑으로 기도하고 헌신하고 쏟아 부어주는 부모보다 더 따뜻한 한결같은 한 사람이 있었다.

 

▲ 엄마 같은 고종 사촌 동생 수진(오른쪽)  

 

다름 아닌 내 사촌동생 김수진이다. 나와는 사촌이지만 법적으로 우리가 형제임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 칸 건너 한 핏줄이고 자매임에는 틀림이 없다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당연한 상식이다나보다 5살 아래인 동생은 그 상식을 벗어난 존재이다.

 

그녀는 늘 밝고 지혜롭다에너지가 밝고 맑아서 바라보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건만 수진이는 믿음이 신실했고, 떨어져 지낸 세월동안 그 믿음도 성숙하고 더욱 빛이 나고 있었다.

 

생각도 행동도 너무 넘치는 듯 허둥대는 나와는 달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이 차분하면서도 밝고 지혜로우면서도 맑아서 함께 대화를 하다보면 많은 세포들이 회복되고 기분까지 정화가 되어진다.

 

그간 믿음이 연약하여 세상 속에서 한없이 둥둥 떠다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고 그녀에게서 배울 점들을 발견한 때마다 나는 조금씩 믿음과 삶의 의욕이 회복되고 있었다는 것을 1년이 지난 지금은 확연하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다.

 

▲ 고모와 동생 수진  


감사일기 쓰는 시간은 매일 나에게 큐티타임이 되어지고, 나의 황폐해진 정서에 따사로움이 새싹 돋듯 자라고 있다믿음의 한사람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주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의 뜻과 때는 주님만 아시지만, 기도하며 그 뜻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훅 불면 구멍이 뚫릴 듯 가벼운 나의 의지와 삶은 이제 어지간한 태풍에도 구멍이 뚫릴 것 같지는 않다.

 

 

불면에 시달리고 불안함에 무엇이든 손끝마저 흐트러지던 내가 지금의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내 동생 수진이로부터 전해 받은 그 사랑의 빛은 아주 작은 틈새에도 흘러들어가 전해지고 아주 멀리에도 향기로 전해질 것임을 알기에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작은 내 동생 수진이가 가장 크고 너무 귀하고 예쁘다.

 

나도 그의 본을 받아 기도의 사람이 되고 스며드는 빛이 되고 싶다그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축복이다. 나는 방화동에서 천국을 누리고 살고 있다.

 

주님 안에서 나는 환경엔 장사가 없다는 어느 목사님의 명언을 환경에도 재활용이 있다로 바뀌는 삶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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