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 큰 이강인, 세계무대에서도 날았다

김수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6/26 [16:32]

참 잘 큰 이강인, 세계무대에서도 날았다

김수현 기자 | 입력 : 2019/06/26 [16:32]
 

▲ 이강인 [사진=대한축구협회] 



전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축구선수, 이강인(발렌시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이강인은 이번 골든볼 수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발렌시아든 새로운 무대든 이강인은 보다 많은 실전 무대를 뛸 수 있는 곳에서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칸진 리!” 
 
장내 아나운서가 부른 한 선수의 이름에 경기장 소음은 순식간에 최고에 달했다. 아르헨티나의 살아있는 전설인 리오넬 메시(32·바르셀로나) 처럼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만 18세의 ‘골든볼(MVP)’ 수상자가 탄생했으니 그럴 법했다. 
 
한국 남자 축구의 역사 새로 써 
입을 쭉 내민 채 시상대를 향해 터벅터벅 걷는 빨간색 유니폼의 어린 소년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올랐다. 이날을 꿈꾸며 축구를 시작한 지 어느덧 13년. 이강인(18·발렌시아)은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에게만 주어진다는 골든볼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오로지 축구만을 생각한 채 스페인에서 동고동락했던 가족들에게 보답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강인은 “가족과 방학을 즐기고 싶다”며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미소를 지었다.
 
이강인은 골든볼 수상으로 한국 남자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축구계에선 아직 변방 취급을 받는 한국에서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50)가 받은 브론즈볼이 종전 최고 성적이었다. 아시아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도 2003년 자국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이스마일 마타르(36·알 와흐다) 이후 두 번째 기록이다. 
 
폴란드 현지에서는 대회 내내 ‘칸진 리’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이강인의 영문 철자가 ‘Kangin Lee’인데 이름을 이어 부르는 외국인들은 강인이 아닌 칸진으로 잘못 부르곤 했다. 한국 축구가 6월 16일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역전패해 우승컵은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공격포인트 6개(2골·4도움)를 올리는 맹활약으로 이번 대회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강인의 인기는 외신기자들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6월 5일 16강 한·일전이 끝난 뒤에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한 일본 기자가 패배를 안긴 이강인과 인터뷰를 진행한 뒤 자국 취재진과 공유했다. 한 폴란드 기자는 이강인에게 “알고 있는 폴란드 축구선수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한국과 유럽 곳곳에서 날아온 팬들의 애정어린 사인 공세에 휩싸였다. 자연스레 이강인은 21명의 한국 선수단에서 가장 늦게 대표팀 버스에 올라야 했다. 젊은 선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이 대회가 마치 이강인의 ‘쇼케이스’처럼 보였다.
 
이강인을 둘러싼 이상 열기는 그가 보여준 놀라운 활약상 덕분이다. 이강인은 작은 체구(1m73·63㎏)에도 장대 수비를 요리조리 따돌리며 질주한다. 수비 2~3명이 붙어도 공을 발에 붙인 듯 뺏기지 않고,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해 따돌리는 고난도 기술을 펼친다.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을 떠올리게 만드는 택배 패스가 동료에게 전달되는 순간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강인은 한국이 결승에 오르는 고비마다 택배처럼 문 앞으로 배달하는 패스로 오세훈(20·아산) 이지솔(20·대전) 조영욱(20·서울) 최준(20·연세대)의 득점을 도왔다. 특히 세네갈과의 연장 혈투 끝에 승부차기로 웃은 6월 9일 8강전에서는 1골·2도움으로 높이 날았다. 오세훈은 “강인이의 헌신을 생각하면 (골든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며 주저없이 칭찬했다.

 이강인은 개인기는 물론 포지셔닝까지 정확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가족들 헌신 속에 스페인 정착한 신동 
이강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그는 2007년 KBS 예능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참가해 축구 솜씨를 뽐내던 6살 축구 신동이었다. 당시에도 이강인은 특출난 기량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인정받았다. 이강인이 자신을 지도했던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48)과의 크로스바 맞추기 내기에서 왼발로 두 차례 모두 적중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6살의 어린아이가 찬 공은 크로스바까지 날아가기도 쉽지 않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잠시 자신의 유소년 클럽에서 이강인을 가르치며 인연을 이어갔던 유 감독은 “(이)강인이는 왼발킥과 드리블 등 내가 가르치는 걸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였다”고 떠올렸다. 
 
 
이강인이 축구선수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것은 인천 석정초 4학년인 2011년. 축구의 엘도라도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명문 발렌시아에서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스페인어에 능통한 지금과 달리 언어장벽에 갇혔던 그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2000년생들과 경쟁해 구단 관계자들을 금세 매료시켰다. 당시 그를 직접 시험했던 발렌시아 유소년 코디네이터 사비 모촐리(현 바르셀로나 라마시아 코치)는 몇몇 구단에서 탐내던 이강인에 대해 “발렌시아로 데려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며 “처음 훈련장에 도착한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강인이 발렌시아에 입단하면서 겪은 가장 큰 걸림돌은 오히려 어른들의 현실이었다. 그가 발렌시아에 입단하려면 외부의 지원 없이 부모와 함께 스페인으로 이주해야 했다. 18세 미만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이운성씨는 발렌시아 측과 몇 차례 미팅을 거치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발렌시아에서 살 겁니다.”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모르던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두 누나까지 모든 가족이 이강인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이강인은 스페인에 정착한 초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축구선수로 순조롭게 성장했다. 밖에서 볼 땐 엄청난 절제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수행했다. 평범한 10살의 아이들과 달리 그는 가족이 자신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생을 부담이 아닌 동기부여로 바꿔 재능을 갈고닦았다. 
 
2013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에서 뛰던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 골잡이 로베르토 솔다도(34·페네르바체)가 이강인의 활약상을 중계방송으로 지켜본 뒤 “지금 뛰고 있는 저 10번 공격수 대단하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은퇴한 스페인 국가대표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사레스(50)가 “이강인이라는 선수”라고 대답한 것은 그의 성장세를 짐작하게 만든다. 실제 이강인의 명성은 발렌시아를 넘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 같은 명문의 눈길을 끌었다. 덕분에 이강인은 2013년 6월 가족의 생활비 전액을 약속받으며 발렌시아와 연장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어깨가 가벼워진 이강인은 성장에 가속페달을 밟았고, 마침내 17살의 나이에 1군 무대를 밟는 고속질주에 성공했다. 이강인은 2018년 10월 31일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레이) 32강 1차전 에브로와의 원정경기에 왼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공격 포인트는 없었으나 골대를 맞히는 중거리슛, 날카로운 왼발 코너킥, 상대 수비를 허물어 버리는 킬러패스 등 자신이 가진 재능을 뽐내 호평을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가장 어린 나이(17세 253일)로 유럽 1군 경기에 데뷔했을 뿐만 아니라 1919년 창단한 발렌시아 역사상 첫 아시아 국적 1군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최연소 1군 출전 외국인 선수는 덤이었다. 

▲ 이강인은 어느 무대로 갈까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다음 시즌 그의 무대는 어디가 될까 
이강인의 이름이 국내에서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정정용 U-20 대표팀 감독(50)은 U-20 월드컵을 겨냥해 2018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린 툴롱컵에 이강인을 불러들였다. 1999년생이 주축이었지만 2살 어린 그가 충분히 기량이 통한다는 판단이었다. 실제 이강인은 대표팀이 기록한 3골 중 2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U-20 월드컵에 참가해 사상 첫 준우승과 골든볼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이강인은 이번 골든볼 수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여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1군 계약을 체결한 그는 11경기 출전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강인은 “발렌시아는 나의 집”이라며 애정을 드러내고 있지만, 기량을 꾸준히 갈고닦으며 성장할 실전 무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U-20 월드컵을 통해 주가가 오른 이강인을 놓고 스페인 레반테와 네덜란드 아약스, PSV 아인트호번 등 유럽 내 다른 팀들의 이적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발렌시아 구단도 이강인의 월드컵 활약을 확인한 이후 다음 시즌부터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익숙한 발렌시아든 새로운 무대든 이강인은 보다 많은 실전 무대를 뛸 수 있는 곳에서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가진 기술과 멘털이 워낙 좋아 유럽 무대에서 실전을 통해 거칠게 단련되면 더 빨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면서 “현재는 실질적으로 경기를 뛸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강인도 “월드컵이 끝났으니 푹 쉬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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